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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4/04 - [엄마랑 크로아티아] - 엄마랑 크로아티아 9일 차: 플리트비체 (1)



여행 10일 차

플리트비체에서



산 속이라 밤새 집 주변이 고요했다. 덕분에 엄마가 푹 잘 잔 것처럼 보였다. 


할머니께서 조식을 준비해주셨다. 재료는 모두 마을에 있는 작은 마켓에서 구할 수 있는 것들이었지만 굉장히 맛있었다. 특히 계란 요리가 아주 부드러워서 엄마도 나도 그 레시피가 궁금했다. 엄마가 늘 바라던 그런 식사였는지, 엄마의 표정이 너무나 행복해 보였다.



오늘은 종일 H코스를 따라 호수 전체를 구경하기로 했다. 다행히 오늘은 잊지 않고 셔틀버스를 잘 탔다. 본격적인 하이킹은 호수 상단부에서 시작했다. 어제와 같은 장소들이었지만 길이 달랐기 때문에 다른 시각에서 풍경을 감상할 수 있었다. 호수 하단부 가까이 갈수록 곳곳에서 오리들을 만났다. 그곳의 오리들은 사람을 무서워하지 않아서 가까이 다가가도 도망가지 않았다.



물이 아주 맑아서 호수 바닥이 다 보일 뿐만 아니라 많은 물고기들이 살고 있었다.


중간에 휴게소를 들렀다. 아주 멀리서도 사람이 많다는 걸 알아챌 수 있을 정도로 바글바글했다. 호수 내의 유일한 공중화장실이 이곳에 있었었는데, 여자화장실의 줄이 끝도 없이 이어져 있어서 언제쯤이나 화장실을 쓸 수 있는 걸까 하고 한숨을 몇 번이나 내쉬었다. 두세 군데 음식점에서 간단한 음식을 팔기도 했다. 하지만 테이블도 다 차 있어서 딱히 앉을 곳이 없었기 때문에 우리는 그냥 계속 걷기로 했다. 다만 간단한 기념품을 구매했다.


호수 하단부를 걷다가 담배를 피우고 있는 사람을 발견했다. 아주 드물었지만 길에 꽁초가 떨어져 있는 걸 발견하기도 했었다. 국립공원 내에서 담배를 피우는 건 불법이 아닌가, 엄마와 수근거렸다. 여행객인지 현지인인지 분간할 수 없었다. 





하이킹 내내 우리는 걸음이 느렸고 가끔 앉아서 쉬기도 했다. 코스 한 바퀴를 다 도는데 6시간 가까이 걸렸다.


숙소로 돌아와 지친 발을 쉬게 해줬다. 점심을 제대로 먹지 못 해서(가져갔던 에너지바와 샌드위치로 때웠다.) 배가 고팠다. 그렇다고 저녁을 먹기에는 이른 시간이었다. 허기나 대충 달래려고 남은 과일과 요거트를 먹었다.


저녁 식사 후, 차를 마시고 싶어하는 우리를 위해 할머니께서 녹차를 준비해주셨다. 식탁에 앉아서 녹차를 마시고 있으니 창밖으로 해가 뉘엿뉘엿 지는 게 보였다. 조용하고 나무가 많은 이곳이 너무 좋아져서, 내일 떠나야 한다는 사실이 안타까웠다. "역시 바다보다는 산이지!" 자다르에서 보였던 아쉬움을 금세 지워버린 나를 보고 엄마가 웃었다.


할머니께서는 우리가 샀던 계란이 많이 남았다고 알려주셨고 이날 저녁에 전부 삶아서 포장해주셨다. 부담스럽게 느껴졌던 친절이 이제는 마냥 고맙게 느껴졌다. "나중에 혼자 다시 오게 되면, 호텔보다는 여기서 묵는 게 더 좋을 거 같아." 내 말에 엄마도 동의했다. 그만큼 호스트 부부는 자주 말을 걸어주셨고 세심하게 챙겨주셨다. 사람 좋고 공기 좋은 곳에서 보낸, 만족스러운 이틀이었다.


다만, 우리는 내일 아침에 자그레브로 가는 방법을 걱정했다. 뚜벅이 여행자의 비애랄까. 이곳은 무키네 마을이었고, 버스가 자주 오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할머니께서는 버스가 다니지 않을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된다고 하시면서 우리를 안심시켰다. 하지만 내일은 버스가 잘 다니지 않는 주말이었고, 때문에 할머니 말씀이 큰 위안은 되지 않았다. 해결할 수 없는 걱정을 한가득 안고 가까스로 잠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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