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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11일 차(+12일 오전)

플리트비체에서 자그레브로



호스트 할머니께서 준비해주신 맛있는 조식을 먹고 체크아웃을 했다. 할아버지께서 정류장까지 차로 바래다주셨다. 할아버지와 마지막 인사를 나누고, 우리는 그곳에 남겨졌다.



허름한 정류장 안쪽 벽에 적힌 수많은 낙서 중에서 한 문장이 눈에 들어왔다. '이곳에 앉는 자, 모든 희망을 버려라.' 정확히 기억나진 않지만 대충 그런 의미였다. 불길했다.


길 건너 맞은편을 보니 정류장과 비슷하게 허름한 인포메이션이 하나 있었다. 가서 물어봤더니, 시간표를 적은 종이를 보여줬다. 아침 8시 쯤에도 버스가 오는 것으로 표시되어 있었다. 안심하고 다시 정류장으로 돌아갔다. 그런데 잠시 뒤, 남자 분이 달려와서는 오늘은 주말이라 8시 버스가 없다고, 잘못 안내했었다고 사과했다. 그리고는 인포메이션 근처에 서 있던 작은 봉고차를 가리키면서 택시를 이용하는 게 어떠냐고 제안했다. 나는 버스를 좀 더 기다리겠다고 말했다. 엄마도 나도 그때까지는 버스를 탈 수 있을 거라는 희망을 아직은 버리지 않고 있었다.


하지만 두 시간 정도가 지나자 희망은 한 조각도 남아 있지 않았다. 지나가는 버스는 많았지만 이 정류장에 서지는 않았고, 많은 사람들이 정류장에 와서 기다렸지만 그들은 인터넷 예매표를 들고 있었다. 우리가 버스를 탈 수 있는 가능성은 아주 희박했다. 봉고차 택시에 가서 가격을 물어봤지만 두 사람이 내기에는 너무 비싼 금액이어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 하는 상황이었다. 그때, 어떤 캐나다 부부가 오더니 봉고차 택시를 함께 탈 사람들을 찾기 시작했다. 옆에서 들어보니 두세 사람 정도만 더 모이면 한 사람 당 버스값 정도만 내고서 자그레브로 갈 수 있는 상황이었다. 엄마는 우리도 저기 껴서 같이 가자고 나를 설득했고, 선택지가 없던 우리는 그 사람들과 함께 봉고차 택시를 탈 수 밖에 없었다.


캐나다 부부는 수다스러웠고 또한 굉장히 친절했다. 함께 탄 사람들과 통성명을 하며 이것저것 이야기를 나눴고, 안색이 창백해진 나에게 본인의 겉옷을 빌려줬다. 두껍게 껴입었던 엄마에 비해 나는 옷이 얇았기 때문에, 두 시간 조금 넘게 그 정류장에 있는 동안 온기란 온기는 죄다 빼앗겼었다.



행동력 좋은 캐나다 부부 덕분에 우리와 다른 여행자들은 편하게 자그레브로 올 수 있었다. 도착하자마자 숙소에 체크인을 하고, 자그레브 시내로 나왔다. 여행 첫날처럼 자그레브의 하늘은 비가 올 것 같았다. 반 옐라치치 광장의 몇몇 건물들은 수리 중이었고, 사람만큼이나 비둘기가 많았다.


광장으로 올 때 트램을 탔는데, 기계에 표를 찍을 수 없었다. 아이를 데리고 있던 어떤 엄마가 우리를 도와주려고 했지만 기계가 먹통이었던 건지 문제는 해결되지 않았다. 엄마는 어쨌든 우리에게 표가 있으니 그냥 가도 괜찮은 거 아닐까, 하고 말했지만 불시 검문에라도 걸리면 골치아파질 게 뻔했다. 결국 나는 트램 앞쪽으로 가서야 문제를 해결할 수 있었다. 사람이 꽤 많았기 때문에 조심조심 움직이는 게 쉽지 않았다.



본격적인 관광을 시작하기 전에 우선 점심을 먹기로 했다. 이전에 자그레브에서 묵었던 숙소 호스트 분이 알려주셨던 레스토랑은 가격이 꽤 비싼 곳이어서 갈 수 없었다. 차선책으로 여행 책에 나온 '보반'이라는 레스토랑에 가기로 했다. 구글 맵이 위치를 제대로 찾지 못해서 찾는데 애를 좀 먹었다. 꽤나 큰 레스토랑이었고 식사 중인 사람도 아주 많았다. 나는 참치 스테이크에 감자를 사이드 메뉴로 주문했고 엄마는 블랙 파스타를 주문했다. 음료와 와인도 한 잔씩 주문했다. 맛은 그럭저럭 나쁘지 않았다.


돌라치 시장이 열리는 장소로 갔지만 시간이 시간인지라 그곳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엄마가 이곳 시장을 꼭 보고 싶어 했기 때문에 내일 오전에 일찍 나와서 시장을 구경하고 떠나기로 했다.



자그레브 대성당 내부는 다른 성당만큼이나 화려했다. 여행 내내 우리는 성당에 큰 감흥이 없었지만 어쩐지 지나치지 않고 매번 들르고 있었다.



오파토비나 공원으로 가는 길. 동네가 아기자기해서 마치 세트장에 와 있는 기분이었다. 우리는 사진을 연신 찍으면서 동네가 너무 예쁘다고 감탄했다.



오파토비나 공원에는 정말, 아무것도 없었다. 벽화 그림이 예쁘다는 것 정도? 너무 휑해서 엄마도 나도 당황스러웠다. 여름밤이었다면 아마 공연 같은 걸 열었을 거라고 말했더니 엄마는 고개를 끄덕였다. 무의미하게 공원을 한 바퀴 돌고 나서 나가려고 할 때, 한복을 입고 걷는 커플을 발견했다. 그분들도 공원을 빠져나가는 중인 것 같았다. 엄마는 한복 입고 여행하는 그 사람들 아니냐며 나에게 알려줬다. 나는 모르는 일이어서 "그래?" 정도로 대꾸했다. 



성 마르코 성당으로 가는 도중에 굉장한 무리의 외국인 여행자들과 마주쳤다. 단체 여행을 온 것 같았다. 그 사람들과 같이 다니게 되면 우리가 불편할 것 같아서 엄마와 나는 걷는 속도를 늦췄다. 그런데 여행 경로가 같았는지, 돌의 문에서도 성 마르코 성당 앞에서도 만나게 되었다.


단체 여행자들에게서 벗어나기 위해 여행 경로를 바꿨다. 바로 로트르슈챠크 탑으로 갔다. 하지만 전망대 표를 담당하는 직원 분은 휴식 시간이라 자리에 없었다. 시간을 때우기 위해 근처를 돌아다니기로 하고 나왔는데, 의미를 이해하기 어려운 다양한 오브제들이 눈에 들어왔다. 나무 밑에는 알록달록한 의자와 테이블이 있었고 커피도 팔고 있었다. 그 거리는 아주 짧았다.



잠시 후에 탑의 전망대로 올라갈 수 있었다. 날은 흐렸지만 전망대 표가 아깝지는 않았다.



바로 근처에 있는 카페에 가서 라떼와 케이크를 주문했다. 마치 절벽 위에 매달린 것 같은 구조의 카페였다. 케이크는 두 종류 다 맛있었는데, 페레로로쉐 케이크는 눈썹이 찌푸려질 정도로 달았다. 엄마는 자신이 바라던 그런 카페에 드디어 왔다면서 굉장히 좋아했다. 날이 맑았으면 더 좋았을 뻔했다는 아쉬움도 함께였다. 그리고 이곳에서 처음으로, 테이블에 돈을 놓고 가는 계산 방식을 목격했다. 영수증, 커피값과 함께 팁을 놓아두고 가는 것 같았다. 돈을 적게 내고 도망가는 사람은 없는 걸까, 이렇게 생각하는 내 자신이 싫었다.


동네를 조금 더 구경하기로 하고, 별다른 목적지 없이 돌아다니다가 웬 골목길로 나오니 다시 반 옐라치치 광장이었다.


이날 저녁 식사는 플리트비체에서 샀던 큰 바게트와 계란, 요거트 등등으로 간단하게 끝냈다. 내일은 드디어 집으로 돌아가는 날이었고, 더 이상 남은 재료들을 들고 다닐 수 없었다.



집으로 돌아가는 날 아침. 돌라치 시장을 둘러보기 위해 이른 시간에 숙소를 나왔다. 물론 체크아웃은 하지 않았다. 커다랗고 무거운 캐리어를 질질 끌며 다니고 싶지는 않았기 때문이다. 노천 시장에는 대개 과일을 팔고 있었다. 어제까지만 해도 기대에 차있었는데, 엄마는 조금 실망한 기색이었다. 엄마는 다시 정신을 차리더니 실내 시장도 보고 싶다고 말했다. 우리는 실내 시장 입구를 찾기 위해 한참을 빙빙 돌았다. 간신히 들어간 그곳은 우리나라의 실내 재래시장 같았다. 고기나 유제품, 올리브유, 건강식품 등등 안 파는 것이 거의 없었다. 구석구석 구경했지만 결국 아무것도 사지 않았다.


오히려 우리는 반 옐라치치 광장에 열린 시장에서 카모마일 차를 잔뜩 구매했다. 반 옐라치치 광장에도 노천 시장이 세워져 있었는데, 대체로 옷이나 바구니, 비누처럼 수제로 만든 것들을 팔고 있었다.


숙소로 돌아오는 길에 버스터미널의 빵집에 들러서 아침으로 먹을 샌드위치를 샀다. 저번에 왔을 때 골랐던 것과는 다른 샌드위치를 골랐다. 물론 새로 고른 샌드위치도 아주 맛있었다. 아침을 다 먹은 후에 우리는 짐을 정리했고, 그제야 체크아웃을 하고 버스터미널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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