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나 익숙해졌다고, 이젠 옷을 만들어 보고 싶다는 욕구가 불쑥불쑥 치밀어 올랐다. 그래서 만들었다. 당장. 8부 고무줄 바지! (8부인지 7부인지, 아무튼 종아리가 드러나는 길이다.) 밑단에 나름 트임도 넣었고, 밑위 길이를 길게 해서 입기 편안하게 만들려고 했지만... 실패작이다. 사진으로 보기에는 그럴싸해 보이지만. 실수 1. 재단할 때 원단 방향을 잘못 잡았다.실수 2. 원단에 맞지 않는 바늘을 사용했기 때문에 장력 조절이 제대로 되지 않았다. 원단이 생각보다 얇았는데 내가 가진 바늘은 14호 뿐... 집에 있는 다른 원단들을 사용하려면 아무래도 11호 바늘을 사야할 것 같다. 실수 3. 2cm 너비의 고무줄은 의외로 넓지 않았다! 허리에 넣으려면 3cm 이상은 되어야 할 듯... 고무줄은 직접 ..
치약과 칫솔이 가방에서 굴러다니는 게 싫었는지, 작은 주머니를 만들어 달라는 엄마의 의뢰를 받았다. 무언가를 만든다는 생각에 흥이 났다. 도서관에 가서 바느질 책들을 보면서 주머니를 만드는 방법과 패턴 모양을 유심히 관찰했다. 지난번에 만든 앞치마는 부록에 있던 패턴의 사이즈를 그대로 베껴 만들었기 때문에 나에게는 조금 크다. 같은 실수는 하지 않으리라. 만드는 방법만 알면 필요한 사이즈에 맞게 조절할 수 있다. 완성! 이번에는 오래돼서 안 입는 청바지를 잘라 사용했다. 바지 밑단으로 갈수록 색이 옅어지는 청바지여서 서로 다른 색의 원단을 얻을 수 있었다. 기왕 얻은 거, 앞뒷면의 색깔이 다르게 나오도록 만들어봤다. 끈은 집에 굴러다니던 운동화 끈(새 것!)을 사용했다. 끈 끝을 잘라내고, 실이 풀리지 ..
우리 집에는 아주 오래된 재봉틀이 있다. 예전에 이모가 구매했던 제품인데, 사놓고도 사용하지 않아서 엄마가 얻어 왔었다. 하지만 엄마도 사용하지 않았고, 그 재봉틀은 창고에 버려져 먼지만 쌓여갔다. 그러다가 바느질에 관심이 생긴 내가 드디어 그 녀석을 발굴해냈다. 재봉틀을 몇 번 사용하다보니 커버가 신경 쓰였다. 실패꽂이에 실패를 꽂아 놓고 나면 커버가 완전히 씌워지지 않는 것이다. 물론 실패를 빼놓으면 되지만, 실 색깔을 매번 바꾸는 것도 아니라서 매번 그렇게 하기에는 상당히 귀찮다. 그래서 아예 커버를 새로 만들기로 했다. 재봉질 연습도 할 겸. 실패를 빼지 않고도 재봉틀 전체를 감쌀 수 있는 커버를 만들자! 완성! 이번에는 패턴을 따로 만들지 않고 원단에 바로 그렸다. 지난번에 얻은 깨달음을 교훈 ..
설거지를 할 때마다 옷이 젖어서 불편했다. 키가 작은 탓인지, 늘 배 쪽이 젖었다. 평소 같았으면 당장 다이소로 달려가서 천 원짜리 앞치마를 구매했겠지만, 이날따라 왠지 내가 직접 만들어보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집 앞 도서관에서 손바느질 책을 빌렸더니 부록으로 패턴을 함께 줬다. 나는 따라 그리기만 하면 됐다! 하지만 우리 집에는 큰 종이가 없어서... A4 용지를 이어 붙여 사용했다. 이걸 붙이면서 '갑자기 이게 뭔 고생인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패턴지 없는 서러움이란... 이틀 동안의 손바느질 끝에 앞치마 완성! 집에 남아도는 천들이 있어서 그걸로 만들었다. 바느질하는 순간마다 잡념이 사라지고 마음이 평온해져서 좋았다. 바느질이 서툴러서 박음질도 삐뚤빼뚤하고 사이즈도 생각보다 크지만, 어쨌든 잘 ..
한국으로 돌아오는 날, 엄마의 얼굴에는 복잡미묘함이 어려있었다. 늘 바라던 곳에 올 수 있었다는 기쁨, 패키지 여행에서 벗어났다는 뿌듯함, 좀 더 머무르고 싶은 아쉬움, 그 외에 무엇이 더 섞여 있는 표정인지 알 수 없었다. 나는 나의 기분도 종잡기 어려웠다. 아마 엄마가 본 나의 표정도 비슷하지 않았을까. 돌아오는 비행기 안에서 우리 사이에는 별다른 대화가 없었다. 내가 인지하고 있던 유일한 생각은 반성이었다. 단둘이 떠났던 첫 여행이자 엄마를 위한 여행, 하지만 엄마를 배려하고 돌보지 못한 상황도 많았다. 미처 예상하지 못한 상황에 엄마를 챙길 겨를이 없던 경우도 있었고, 난생 처음 맡은 가이드 역할이 버거워서 짜증을 내기도 했다. 유쾌한 시간만 누릴 수 없는 것이 여행이지만 그 원인을 내가 제공하기..
[이전 글]…2018/04/03 - [엄마랑 크로아티아] - 엄마랑 크로아티아 8일 차: 자다르2018/04/04 - [엄마랑 크로아티아] - 엄마랑 크로아티아 9일 차: 플리트비체 (1)2018/04/05 - [엄마랑 크로아티아] - 엄마랑 크로아티아 10일 차: 플리트비체 (2) 여행 11일 차(+12일 오전)플리트비체에서 자그레브로 호스트 할머니께서 준비해주신 맛있는 조식을 먹고 체크아웃을 했다. 할아버지께서 정류장까지 차로 바래다주셨다. 할아버지와 마지막 인사를 나누고, 우리는 그곳에 남겨졌다. 허름한 정류장 안쪽 벽에 적힌 수많은 낙서 중에서 한 문장이 눈에 들어왔다. '이곳에 앉는 자, 모든 희망을 버려라.' 정확히 기억나진 않지만 대충 그런 의미였다. 불길했다. 길 건너 맞은편을 보니 정류장..
[이전 글]…2018/04/01 - [엄마랑 크로아티아] - 엄마랑 크로아티아 7일 차: 스플리트2018/04/03 - [엄마랑 크로아티아] - 엄마랑 크로아티아 8일 차: 자다르2018/04/04 - [엄마랑 크로아티아] - 엄마랑 크로아티아 9일 차: 플리트비체 (1) 여행 10일 차플리트비체에서 산 속이라 밤새 집 주변이 고요했다. 덕분에 엄마가 푹 잘 잔 것처럼 보였다. 할머니께서 조식을 준비해주셨다. 재료는 모두 마을에 있는 작은 마켓에서 구할 수 있는 것들이었지만 굉장히 맛있었다. 특히 계란 요리가 아주 부드러워서 엄마도 나도 그 레시피가 궁금했다. 엄마가 늘 바라던 그런 식사였는지, 엄마의 표정이 너무나 행복해 보였다. 오늘은 종일 H코스를 따라 호수 전체를 구경하기로 했다. 다행히 오늘은 ..
[이전 글]…2018/03/31 - [엄마랑 크로아티아] - 엄마랑 크로아티아 6일 차: 두브로브니크 (3)2018/04/01 - [엄마랑 크로아티아] - 엄마랑 크로아티아 7일 차: 스플리트2018/04/03 - [엄마랑 크로아티아] - 엄마랑 크로아티아 8일 차: 자다르 여행 9일 차자다르에서 플리트비체로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플리트비체의 호스트 분에게 메일을 보냈다. 그곳 버스정류장에서 만나기로 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이른 체크아웃을 하고 버스터미널로 갔다. 우리가 탈 버스는 아직 오지 않았다. 엄마는 버스터미널 화장실에 다녀오고는, 카페나 식당 화장실보다 공중화장실 그러니까 사용료를 내는 곳이 더 깨끗하지 않은 것 같다고 말했다. 버스는 정해진 시간보다 조금 늦게 왔다. 기사 분은 짐을 실으면서 ..
[이전 글]…2018/03/30 - [엄마랑 크로아티아] - 엄마랑 크로아티아 5일 차: 두브로브니크 (2)2018/03/31 - [엄마랑 크로아티아] - 엄마랑 크로아티아 6일 차: 두브로브니크 (3)2018/04/01 - [엄마랑 크로아티아] - 엄마랑 크로아티아 7일 차: 스플리트 여행 8일 차스플리트에서 자다르로 늦은 봄이라고 해도 될 만큼 따뜻하고 맑은 날을 맞았다. 엄마는 잠을 잘 못 잔 것 같았다. "너는 잘만 자더라. 안 시끄러웠어?" 숙소 바로 밑의 클럽에서 새벽까지 이어진 음악 소리 때문에 잠을 설쳤다고 했다. 아침을 간단히 먹고 나서 우리는 곧장 자다르로 향했다. 자다르에 도착하자마자 내일 떠날 버스표를 끊고 숙소로 갔다. 이곳 숙소의 호스트 분도 할머니셨다. 둘이서 쓰기에는 민망할 ..
[이전 글]…2018/03/29 - [엄마랑 크로아티아] - 엄마랑 크로아티아 4일 차 : 두브로브니크 (1)2018/03/30 - [엄마랑 크로아티아] - 엄마랑 크로아티아 5일 차: 두브로브니크 (2)2018/03/31 - [엄마랑 크로아티아] - 엄마랑 크로아티아 6일 차: 두브로브니크 (3) 여행 7일 차두브로브니크에서 스플리트로 두브로브니크에서 먹는 마지막 아침은 아주 푸짐했다. 남은 재료를 거의 몽땅 털어서 만들었다. 사진을 찍을 때쯤에는 이미 포만감으로 가득했지만 버리기가 아까워서 기어코 다 먹고 말았다. 짐을 챙겨서 나가니 호스트 분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호스트의 차는 버스 노선과는 반대 방향으로 달렸다. 왜 이 방향으로 가시나 싶었는데, 관광객이 잘 모를 만한 동네 샛길을 탔다. 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