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으로 돌아오는 날, 엄마의 얼굴에는 복잡미묘함이 어려있었다. 늘 바라던 곳에 올 수 있었다는 기쁨, 패키지 여행에서 벗어났다는 뿌듯함, 좀 더 머무르고 싶은 아쉬움, 그 외에 무엇이 더 섞여 있는 표정인지 알 수 없었다. 나는 나의 기분도 종잡기 어려웠다. 아마 엄마가 본 나의 표정도 비슷하지 않았을까. 돌아오는 비행기 안에서 우리 사이에는 별다른 대화가 없었다. 내가 인지하고 있던 유일한 생각은 반성이었다. 단둘이 떠났던 첫 여행이자 엄마를 위한 여행, 하지만 엄마를 배려하고 돌보지 못한 상황도 많았다. 미처 예상하지 못한 상황에 엄마를 챙길 겨를이 없던 경우도 있었고, 난생 처음 맡은 가이드 역할이 버거워서 짜증을 내기도 했다. 유쾌한 시간만 누릴 수 없는 것이 여행이지만 그 원인을 내가 제공하기..
[이전 글]…2018/04/03 - [엄마랑 크로아티아] - 엄마랑 크로아티아 8일 차: 자다르2018/04/04 - [엄마랑 크로아티아] - 엄마랑 크로아티아 9일 차: 플리트비체 (1)2018/04/05 - [엄마랑 크로아티아] - 엄마랑 크로아티아 10일 차: 플리트비체 (2) 여행 11일 차(+12일 오전)플리트비체에서 자그레브로 호스트 할머니께서 준비해주신 맛있는 조식을 먹고 체크아웃을 했다. 할아버지께서 정류장까지 차로 바래다주셨다. 할아버지와 마지막 인사를 나누고, 우리는 그곳에 남겨졌다. 허름한 정류장 안쪽 벽에 적힌 수많은 낙서 중에서 한 문장이 눈에 들어왔다. '이곳에 앉는 자, 모든 희망을 버려라.' 정확히 기억나진 않지만 대충 그런 의미였다. 불길했다. 길 건너 맞은편을 보니 정류장..
[이전 글]…2018/03/30 - [엄마랑 크로아티아] - 엄마랑 크로아티아 5일 차: 두브로브니크 (2)2018/03/31 - [엄마랑 크로아티아] - 엄마랑 크로아티아 6일 차: 두브로브니크 (3)2018/04/01 - [엄마랑 크로아티아] - 엄마랑 크로아티아 7일 차: 스플리트 여행 8일 차스플리트에서 자다르로 늦은 봄이라고 해도 될 만큼 따뜻하고 맑은 날을 맞았다. 엄마는 잠을 잘 못 잔 것 같았다. "너는 잘만 자더라. 안 시끄러웠어?" 숙소 바로 밑의 클럽에서 새벽까지 이어진 음악 소리 때문에 잠을 설쳤다고 했다. 아침을 간단히 먹고 나서 우리는 곧장 자다르로 향했다. 자다르에 도착하자마자 내일 떠날 버스표를 끊고 숙소로 갔다. 이곳 숙소의 호스트 분도 할머니셨다. 둘이서 쓰기에는 민망할 ..
[이전 글]…2018/03/29 - [엄마랑 크로아티아] - 엄마랑 크로아티아 4일 차 : 두브로브니크 (1)2018/03/30 - [엄마랑 크로아티아] - 엄마랑 크로아티아 5일 차: 두브로브니크 (2)2018/03/31 - [엄마랑 크로아티아] - 엄마랑 크로아티아 6일 차: 두브로브니크 (3) 여행 7일 차두브로브니크에서 스플리트로 두브로브니크에서 먹는 마지막 아침은 아주 푸짐했다. 남은 재료를 거의 몽땅 털어서 만들었다. 사진을 찍을 때쯤에는 이미 포만감으로 가득했지만 버리기가 아까워서 기어코 다 먹고 말았다. 짐을 챙겨서 나가니 호스트 분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호스트의 차는 버스 노선과는 반대 방향으로 달렸다. 왜 이 방향으로 가시나 싶었는데, 관광객이 잘 모를 만한 동네 샛길을 탔다. 호..
[이전 글]…2018/03/28 - [엄마랑 크로아티아] - 엄마랑 크로아티아 3일 차: 류블랴나 (2)2018/03/29 - [엄마랑 크로아티아] - 엄마랑 크로아티아 4일 차 : 두브로브니크 (1)2018/03/30 - [엄마랑 크로아티아] - 엄마랑 크로아티아 5일 차: 두브로브니크 (2) 여행 6일 차두브로브니크에서 새벽부터 다시 하늘이 흐려졌다. 오전 내로 비가 내릴 것 같았다. "어제 성벽 투어하기를 잘 했다." 날씨를 확인한 엄마는 이렇게 말했다. 아침을 먹으면서 엄마와 함께 오늘 일정을 정리했다. 엄마도 나도 구시가에는 또 다시 가고 싶지 않았다. 어제 가보니 사람이 너무나 많아서 힘들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엄마가 말라 브라차 약국에서 크림을 사고 싶어 해서 다시 한 번 갈 수 밖에 없었다..
[이전 글] … 2018/03/26 - [엄마랑 크로아티아] - 엄마랑 크로아티아 : 자그레브2018/03/27 - [엄마랑 크로아티아] - 엄마랑 크로아티아 : 류블랴나 (1)2018/03/28 - [엄마랑 크로아티아] - 엄마랑 크로아티아 : 류블랴나 (2) 여행 4일 차류블랴나에서 두브로브니크로 새벽부터 일어나 떠날 채비를 하느라 부산했다. 예약해놓은 두브로브니크 행 비행기를 타려면 제시간에 자그레브 공항에 도착해야만 했다. 전날 잠들기 전에 짐을 다 챙겨두긴 했지만, 두고 가는 물건은 없는지 다시 한번 확인했다. 여권이 잘 있는지 확인하던 중, 자그레브에서 국경을 넘어 오면서 도장을 하나만 찍었다는 생각이 얼핏 들었다. '잠깐만. 출국 도장하고 입국 도장 하나씩이면 도장을 총 두 개 받았어야 하는..
[이전 글]2018/03/25 - [엄마랑 크로아티아] - 엄마랑 크로아티아 : 프롤로그 여행 1일 차 한국에서 자그레브로 여행을 떠나는 날 아침, 기합이 바짝 들어갔다. 아시아를 벗어나는 건 처음인데다 엄마도 챙겨야 한다. 게다가 경유까지! 책임감이 막중했다. 폴란드 LOT 항공을 이용했고 바르샤바에서 경유해야 했다. 바르샤바 공항은 넓지 않고 경유하는 사람들을 위해 바닥에 안내선이 색색깔로 표시되어 있다. 크로아티아로 가기 위해서는 Non Schengen 표시를 따라 가면 된다. 경유할 때도 짐 검사를 다시 받는다. 캐리어는 인천공항에서 크로아티아로 바로 보냈지만 둘 다 배낭이 있었다. 문제는 내 배낭. 전자기기가 있냐는 물음에 그렇다고 대답했다. 엄마의 휴대용 혈압기가 나에게 있었기 때문이다. 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