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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9일 차

자다르에서 플리트비체로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플리트비체의 호스트 분에게 메일을 보냈다. 그곳 버스정류장에서 만나기로 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이른 체크아웃을 하고 버스터미널로 갔다. 우리가 탈 버스는 아직 오지 않았다. 엄마는 버스터미널 화장실에 다녀오고는, 카페나 식당 화장실보다 공중화장실 그러니까 사용료를 내는 곳이 더 깨끗하지 않은 것 같다고 말했다.


버스는 정해진 시간보다 조금 늦게 왔다. 기사 분은 짐을 실으면서 모든 승객에게 목적지를 물었다. 우리는 호스트 분이 알려준 대로 무키네 마을에서 내린다고 대답했다. 무키네에 도착하자 기사 분은 큰 소리로 무키네라고 알려주었고, 짐도 내려주셨다. 무키네 정류장에서 할아버지 한 분이 내 이름을 적은 종이를 들고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우리는 할아버지의 차를 타고 무키네 마을로 들어갔다. 




이번 숙소의 호스트 분은 어르신 부부였다. 할머니께서 우리를 집으로 안내하셨고 할아버지는 캐리어를 옮겨주셨다. 엄마와 내가 직접 캐리어를 챙기려고 하자 할머니가 단호하게 "No."라고 말리셨다. 무겁지 않을까 걱정했는데, 할아버지는 생각보다 힘이 셌다. 이번 숙소는 아파트먼트가 아니라 호스트의 집에 있는 방을 사용할 수 있는 곳이었다. 그래도 호스트가 생활하는 곳과 분리되게끔 벽이 설치되어 있었고 분리된 복도 입구에도 문이 달려 있었을 뿐만 아니라 숙박객들만 사용하는 욕실도 따로 있어서 크게 불편하지 않을 것 같았다. 마침 숙박객이 우리 뿐이어서 원하는 방을 골라 쓸 수 있었다. 다른 숙박객과 욕실을 같이 쓰지 않아도 된다는 점에 안도했다. 


우리는 웰컴쿠키와 커피를 대접받았는데, 함께 나온 잼이 정말 맛있었다. 쿠키와 잼 모두 할머니께서 만드셨다고 했다. 엄마는 한국에 돌아가서 본인도 이런 잼을 만들고 싶다고 말했고, 찻잔과 그릇 세트에도 관심을 가졌다. 그리고 나서 할머니에게 플리트비체 관련한 정보를 안내 받았다. 우리가 길을 잃을 것을 대비해서 숙소의 주소와 전화번호가 적힌 명함도 챙겨주셨다. 전날까지만 해도 비가 많이 왔었다면서, 할머니는 우리에게 운이 좋다고 하셨다. 물론 비가 내려도 플리트비체의 물은 언제나 맑다고 덧붙이셨다.



점심 때가 되어서 마을의 유일한 식당을 찾아갔다. 가는 길에 마을 곳곳을 둘러봤는데 정말 작고 평화로운 곳이었다. 집들도 모두 옛날에 지어진 그대로인 것 같았다. 식당을 찾던 중에 길을 잃어서 다른 숙소의 호스트 분이 도와주셨다. 작은 동네에서도 길을 잃을 수 있구나, 새삼 우리가 웃겼다. 나는 햄버거를 먹었고 엄마는 파스타를 먹었다. 맛은 그냥저냥 먹을 만했다. 경치를 보는 재미가 더 쏠쏠했다고나 할까.


식사를 하면서 플리트비체 하이킹 계획을 세웠다. 오늘은 이미 오전을 다 보냈으니까 짧은 코스를 다녀오고 내일은 크게 한 바퀴를 도는 긴 코스를 걷기로 했다. 하이킹을 대비해서 마을의 작은 마켓에서 생수와 에너지바를 몇 개 샀다. 저녁 식사를 만들어 먹을 식재료 몇 가지도 함께 구매했다. 그곳도 마을의 유일한 마켓이었다.



숙소에 들러서 짐을 내려놓고, 할머니께서 알려주신 길을 따라 플리트비체 입구로 갔다. 무키네 마을과 플리트비체 2번 입구 사이에는 거의 직선으로 된 숲길이 있었다. 처음에 이 길을 안내 받았을 때, 내 표정이 좋지만은 않았었나 보다. 할머니께서는 이 동네 사람들도 모두 이 길을 다닌다며 걱정하지 말라고 안심시켜주셨다. 실제로 길은 고요했지만 이따금 지나가는 사람들을 만날 수 있었다. 걱정했던 것보다 햇빛이 많이 드는 곳이었다. 숲길을 걷는 것만으로도 기분이 좋아졌고, 나는 이내 플리트비체 입구 근처의 호텔에서 묵지 않기를 잘 했다고 생각했다.


내일도 하이킹을 할 계획이었기 때문에 우리는 2일권을 구매했다. 인포메이션에서 지도를 구하려고 했지만 담당자는 티켓에 있는 것만으로도 충분할 거라고 말했다. 우리가 짧은 코스를 추천해달라고 하자 B코스를 가리켰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B코스는 힘들었다. 왜냐하면 우리가 코스를 거꾸로 올라갔기 때문이다. B코스는 호수 상단부를 둘러볼 수 있는 코스인데, 버스를 타고 올라간 뒤 걸어서 내려오게끔 되어 있다. 그러나 우리는 걸어서 올라갔고 내려올 때 버스를 탔다. 사실 국립공원 내부는 표지판이 굉장히 잘 되어있어서 갈림길에서 머뭇거리거나 길을 잃을 염려는 거의 없다. 그런데 먼저 버스를 타야 한다는 사실을 깜박 잊는 바람에 얼결에 코스 자체를 거꾸로 오른 것이다. 때문에 플리트비체의 절반을 봤을 뿐이지만 꽤나 힘들었다. 산길을 걷기도 했기 때문에 더더욱 힘들게 느껴졌던 것 같다. 나중에 할머니께 들었지만, 산길은 험해서 호수를 옆에 끼고 걸어야 편하다.


몸은 힘들었지만 마음만은 그렇지 않았다. 공기가 맑았고 물도 맑았다. 잔잔한 호수에 산과 하늘이 비쳐서 데칼코마니가 만들어지는 곳도 있었다. 엄마는 귀국하면 이런 공기는 못 맡는다며 크게 심호흡하기도 했다. 아무튼, 우리처럼 거꾸로 오르는 사람도 많았다.


짧은 하이킹을 마치고 돌아온 우리가 너무 힘들다고 말했더니, 할머니는 웃으셨다. 할아버지께서는 매일 같이 하이킹을 하신다고 하면서. 그래서 그렇게 정정하신가, 하고 엄마는 나에게 작은 소리로 말했다. 엄마는 방에서 잠깐 쉬어야겠다고 하더니 침대에서 그대로 뻗었다. 나도 내 침대에 누워서 잠깐 눈을 붙였다.


저녁식사를 함께하지는 않았지만, 할머니께서는 우리가 식사 준비하는 것을 도와주셨다. 계란을 전부 풀어서 계란프라이처럼 만들어 주셨는데 정말 부드럽고 맛있어서 깜짝 놀랐다. 식사를 마치고 나서 정리하려고 그릇을 집었는데 할머니께서 또 다시 우리를 만류했다. 본인의 일이라면서 방으로 돌아가 쉬어도 괜찮다고. 우리는 조식 시간을 안내받고 나서 방으로 들어왔다.


잠들기 전에 엄마와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눴다. 내일 하이킹 계획을 세우기도 했고 무키네 마을에 대한 감상을 나누기도 했다. 호스트 부부에 대한 이야기도 나눴다. 서비스 정신이 웬만한 호텔리어 뺨치는 수준이라며 살짝 부담스럽기까지 하다고. 숙소를 드나들 때마다 현관에서 맞이해주거나 배웅하셨고 차나 커피를 준비해주시면서도 함께 드시지는 않았다. 우리가 고객인 건 맞지만 철저히 대접받는다는 게 썩 편하지는 않았다. 어르신이라서 더 그렇게 느끼는 것 같아, 라고 대꾸했다. 하이킹 덕분인지, 엄마는 금방 잠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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