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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6일 차

두브로브니크에서



새벽부터 다시 하늘이 흐려졌다. 오전 내로 비가 내릴 것 같았다. 


"어제 성벽 투어하기를 잘 했다."


날씨를 확인한 엄마는 이렇게 말했다.


아침을 먹으면서 엄마와 함께 오늘 일정을 정리했다. 엄마도 나도 구시가에는 또 다시 가고 싶지 않았다. 어제 가보니 사람이 너무나 많아서 힘들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엄마가 말라 브라차 약국에서 크림을 사고 싶어 해서 다시 한 번 갈 수 밖에 없었다. 그래서 기왕 가는 김에 어제 미처 보지 못 했던 성당들만 살짝 둘러보고 오기로 했다. 여기에 언제 또 올지 모르니까. 그리고 오후에는 별 거 없이 숙소에서 커피나 마시며 늘어져 쉬기로 합의했다. 우리는 느지막히 숙소를 나섰다.


기다리는 버스가 오지 않았다. 그때 처음 보는 번호의 버스가 왔고, 나는 패기 있게 이걸 타자고 제안했다. 엄마는 반신반의 했지만 나를 따라 그냥 탔다. 잠시 후, 버스는 우리가 가야 할 방향과 반대 방향으로 방향을 돌렸다. 다음 정류장에 도착했을 때 기사님께 물어보니 근처에 있는 다른 정류장을 알려주셨다. 그리고 버스표는 환승이 될 테니까 걱정하지 말라고 안심시켜주시기도 했다. 버스에서 내린 엄마는 그럴 줄 알았다며 농담 반 진담 반으로 타박했고 나는 크게 웃을 수 밖에 없었다.


구시가에 도착하자마자 약국을 찾아갔다. 오전인데도 약국 안에는 사람이 많았다. 명색이 약국인데 약을 사러 온 사람은 거의 없었고 대부분이 그 약국에서 판매하는 천연 화장품을 사러 온 관광객들이었다. 약사 분은 썩 유쾌한 표정이 아니었다. 게다가 관광객들이 약국 문을 열어 놓고 다녀서 '문 좀 닫아 달라'고 몇 번이나 소리쳤는지 모른다. 나도 화장품을 사러 온 관광객 중 하나였기 때문인지, 그 약사 분이 안쓰러우면서도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크림과 화장수를 산 후, 서둘러 그곳을 나왔다.



어제 입장 시간이 안 맞아 가지 못했던 성 블라호 성당에도 들어가보고, 성 이그나치예 성당 내부의 그림도 구경했다. 두브로브니크 대성당에 가서는 안으로 들어가지 않고 밖에서만 구경하고 내려왔다. 


점심을 먹을 만한 곳을 찾아다니던 중에 의장 궁전을 지나치게 되었다. 의장 궁전 내부가 박물관이라고 기억하고 있던 것을 엄마에게 얘기해줬더니 엄마는 점심 먹고 나서 들어가보자,라고 말했다. 그렇게 여기저기 기웃거리다 적극적으로 호객하던 어떤 직원 분에게 이끌려 그 식당에서 점심을 먹게 되었다. 엄마는 아침 식사가 덜 소화됐던지 샐러드만 주문했고 나는 해산물 파스타를 먹었다. 앉아 있는 동안 빗방울이 간간이 떨어졌지만 차양 덕분에 비를 맞지는 않았다. 간단히 식사를 마치고, 우리는 의장 궁전으로 향했다. 


입구에서 그림과 유물들이 전시된 복도를 지나면 의장 궁전 내부로 들어가게 되는데, 의외로 시간 내서 구경할 만한 곳이었다. 1, 2층으로 나뉘어져 있었고, 2층은 당시 귀족들의 방을 재현해놓은 것처럼 꾸며져 있었다. 2층에서 창문 너머로 거리를 내려다 보는데 기분이 묘했다. 우리는 화려한 가구와 도자기 등을 살펴보면서 2층에서 오랜 시간을 보냈다.



날씨가 다시 쌀쌀해져서 엄마가 추위를 탔다. 잠시 쉬는 시간을 갖기로 하고, 플라차 거리 끝자락에 있는 카페에 들어갔다. 사람들은 대부분 야외 테이블에 앉았지만 우리는 카페 내부를 선택했다. 


주문한 치즈 케이크가 나왔을 때 나는 웃음이 터졌다. 케이크 하나를 통째로 담을 수도 있을 것 같은 커다란 접시에 달랑 한 조각이 올려져 있는 모습이 과대포장을 떠올리게 했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넓은 캔버스에 그려진 예술작품 같아서 손대기가 아까웠다. 그리고 커피가 아주! 맛있었다. 엄마는 커피 맛에 흡족했는지, 지금까지 여기서 마신 커피 중에 최고라고 표현했다.



숙소로 바로 돌아가지 않고 내일 거쳐갈 두브로브니크 버스터미널에 잠시 들렀다. 내일 버스표를 미리 끊어놓기 위해서 왔지만 숙소에서 버스터미널까지 걸리는 시간도 알아두고 싶었다. 창구에 계신 어르신의 영어 악센트를 알아듣지 못 해서 식은땀이 날 것 같았다.


우리는 숙소로 다시 돌아오자마자 널브러졌다. 그리고 낮잠을 잤다. 


잠에서 깨어나 보니 한 시간 정도 흘렀다. 엄마는 어제 저녁에 산책 갔던 곳으로 한번 더 가보고 싶어했다. 아침에는 오늘 푹 쉬고 싶다고 말하더니, 아쉬웠나. 그쪽 부근에 해수욕장이 있는데 맛집이 있다고 들었다던가, 아무튼 그런 이유였다. 지도를 확인해보니 걸어서도 갈 수 있을 것 같은 거리여서 우선 걸어가 보기로 했다. 하지만 금세 포기했고, 결국 도중에 버스를 탔다.



라파드 지구 쪽 해수욕장에 도착했지만 우리는 해수욕을 하러 온 것도 아니었고 이곳에 뭐가 있는지도 알지 못 했다. 그래서 그냥 안쪽으로 좀 더 걸어가 보기로 했다. 해수욕장 끝자락에서 갈림길이 나왔는데 오른쪽은 카페거리처럼 보였고 왼쪽은 큰 호텔과 산책길이 보였다. 산책길을 먼저 걸었다. 바닷바람에 나무들이 살랑거렸다. 어느 새 하늘도 맑아졌다. 종 잡을 수 없는 날씨였다. 산책길 중간중간에 바다로 내려갈 수 있는 계단이 있었다. 안전망을 쳐놓은 곳의 계단에서는 사람들이 다이빙을 하며 놀고 있었고, 더 먼 곳에서는 계단 밑에 마련된 좁은 공간에서 커플끼리 사진을 찍고 있었다. 엄마와 나도 안전해 보이는 곳을 선택해서 내려가 사진을 찍었다. 파도가 조금 높아서 무서웠는데, 엄마는 오히려 신이 났었다. 그렇게 30분을 걸으니 산책길이 끝났고, 다시 되돌아 나왔다.


그리고 카페거리 입구 근처에 있는 카페에서 커피를 한 잔씩 마셨다. 파스타 맛집을 찾으러 왔지만 카페와 식당을 겸하는 곳들 뿐인 것 같아서 그냥 커피만 마시기로 했다. 그 카페는 야외 테이블에 흔들의자가 놓여 있는 재미있는 곳이었다.



커피를 다 마시고 숙소에 돌아갈 때, 바다에는 노을이 지고 있었다.


숙소에 돌아오니 옆집 테라스에 서 있던 호스트가 우리를 불렀다. 내일 체크아웃을 하면 어디로 갈 거냐고. 버스터미널로 가야 한다고, 티켓도 이미 사놨다고 말하자 호스트는 그럼 자기 차로 데려다주겠다며 체크아웃 시간과 버스 시간을 물었다. 아주 이른 아침에 체크아웃 하기를 원한다고 했더니, 호스트는 그럴 필요 없다고 손사래를 쳤다. 그리고 버스 시간 30분 전에 출발해도 충분하다고 말했고, 나는 설득 당했다. 어제오늘 아침에 본 러시아워가 떠올라서 걱정됐지만 여기 사는 분이 충분하다고 하니 더 이상 할 말이 없었다.


저녁 식사는 챙겨갈 수 없는 재료(야채와 고기)를 위주로 만들었다. 내일 아침 식사까지 하고 나면 빵 조금과 요거트 그리고 계란이 남을 것 같았다. 계란은 전부 삶아서 가져가기로 했다. 밥을 먹으면서 두브로브니크에 대한 소감을 나눴다. 엄마는 한 곳에 3일 정도 머무르니 동네도 구경할 수 있고 시간도 여유롭게 쓸 수 있어서 좋았다고 말했다. 나도 같은 생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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