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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3일 차

류블랴나에서



아주 일찍 일어났다. 조식을 먹기 위해서. 어제 체크인 할 때 조식 시간을 안내 받았었는데 잘 기억나지 않았다. 새벽부터 고민하다가 결국 7시가 채 안 돼서 내려갔다.



기대하지 않았는데 의외로 정말 괜찮았다. 빵, 햄, 치즈, 야채와 과일, 시리얼 등등 다양하게 준비되어 있었다. 커피 뿐만 아니라 코코아까지! 오늘도 하루 종일 돌아다닐 예정이었기 때문에 이것저것 다양하게 챙겨 먹었다. 우리가 조식룸에 있는 동안, 혼자 온 다른 여행자들이 간간이 조식을 먹고 갔다. 다른 사람들을 힐끔 살펴보니 시리얼 한 그릇 혹은 토스트 한 조각과 커피 정도만 먹는 것 같았다.


"우리 너무 많이 먹는 거 아니야?"

"응?"


엄마는 다른 사람들이 떠난 테이블을 돌아보고는 웃었다. 우리 테이블에만 접시가 한 가득이었다. 다 비운 접시를 잘 쌓아서 테이블 한 쪽에 치워두고 게스트하우스를 나왔다. 오늘의 첫 목적지는 포스토이나 동굴! 한국에서부터 엄마는 이 동굴에 가기를 바랐다.


숙소에서 나오자마자 근처 슈퍼에서 중간 사이즈의 민트 향 샴푸를 하나 샀다. 숙소에는 바디샴푸가 비치되어 있었는데 머리 감는 용도의 샴푸가 없어서 좀 애매했다. 샴푸로는 몸을 씻는 데 별 문제가 없지만 바디샴푸로 머리를 감는 건 왠지 느낌이 이상하다. 그래서 이 샴푸를 여행 내내 잘 쓰기로 했다.



기다리는 버스가 아직 정류장에 없기에 근처 카페에서 커피 한 잔 마셨다. 나는 라떼, 엄마는 카푸치노. 어제 엄마가 카페에 가고 싶어 하는 걸 들어주지 못 한 게 마음에 걸렸었다. 버스가 언제 올지 몰라서 계속 예의주시 해야 했지만 어쨌든 엄마가 좋아했다. 커피가 생각보다 맛있었다. 


커피를 다 마시고 나왔는데도 버스가 오지 않았다. 밖에서 조금 더 기다리고 나서야 버스를 탈 수 있었다. 우리는 버스표를 미리 끊지 않아서 기사 분께 직접 결제했다. 


1시간인가 1시간 반 정도를 달려서 어느 정류장에 도착했다. 기사 분께 물어보니 버스가 동굴 입구까지는 가지 않고 여기서 내려서 조금 걸어가야 한다고 했다. 같은 버스를 탔던 여자 한 분이 우리와 함께 내렸다. 한국인이었고, 혼자서 여러 나라를 여행하고 있는 중인 것 같았다. 그분은 일행이 없었고 우리는 지도가 없었다. 물론 여행 책에 지도가 나와 있긴 했지만 상세히 표시되어 있진 않았다. 그분과 우리 둘은 목적지가 같아서 함께 가기로 했다.



포스토이나 동굴로 걸어가는 길은 한적했다. 아주 큰 땅도 아닌데 이 나라는 넓은 대지가 참 많이 보였다.


우리는 걸어가면서 대체로 날씨 이야기를 나눴다. 따뜻한 날씨를 예상하고 류블랴나로 넘어 왔는데 이렇게 추울 줄은 몰랐다, 갑자기 비가 와서 그렇다, 자그레브에서 만난 호스트가 말하기를 이상 기후 때문인 것 같다고 했다 등등. 엄마와 내가 달랑 책 한 권 들고 여행하고 있다고 말하자 그분은 조금 놀라는 눈치였다. (아, 이 분 성함이 기억나지 않는다.)


입장표를 사고 동굴 입구로 향하던 도중에 갑자기 또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폭우였다. 동굴 입구에 세워진 간이 천막에서 잠시 비를 피할 수 있었다. 비가 너무 많이 내려서 솔직히, 동굴이 무너지지는 않을까 걱정됐다.



동굴 내부는 정말 넓고 천장도 높았다. 사람이 걷는 길은 잘 정비되어 있었다. 폭우 때문인지 동굴 내부에 물이 좀 흐르긴 했지만 엄마랑 내 신발 밑창은 미끄러지는 재질이 아니라서 괜찮았다. 천장에서 자꾸 물이 떨어져서 나는 챙겨온 우비를 꺼내 입었고, 엄마는 춥다면서 가방에서 겉옷 하나를 더 꺼내 입었다. 비가 올 때를 대비해 이것저것 챙겨 나온 게 도움이 됐다.


입장하기 전에 받아온 기기 덕분에 동굴 투어 가이드를 따라다니지 않아도 동굴에 대한 설명을 들을 수 있었다. 어차피 한국어 가이드는 없어서 고민할 필요도 없었다. 기기에는 한국어도 등록되어 있어서 매 포인트마다 유용하게 사용했다. 설명에 따르면, 이 동굴은 아마 인간이 살기 이전부터 형성되고 있었을 거라고 한다.



두 시간, 세 시간 정도 걸으면 동굴 길이 좁아지면서 길이 거의 끝나감을 알려준다. 처음에는 좋아하던 엄마도 조금은 지친 듯했다. 정말이지, 동굴 투어에는 체력이 필수다. 함께 들어온 여자 분이 우리를 찍어주셨고, 우리도 그 분의 독사진을 찍어드렸다. 


동굴에서 나온 후에 여자 분과 우리는 각자 볼 일을 마치고 다시 만나기로 했다. 엄마와 나는 줄이 어마어마하게 긴 화장실에 들르고 기념품 가게도 구경했다. 그리고 버스정류장으로 내려갔다. 여전히 폭우가 내리고 있었기 때문에 신발이 물을 먹어 아주 무거워졌다. 정류장에는 버스도 없었고 여자 분도 없었다. 아직 오지 않은 건가 싶어서 정류장 옆에 있는 카페에서 쉬며 기다리기로 했다. 휴일이라 건물 앞문을 잠궈 놓은 건지, 입구를 찾지 못해 한참을 빙글빙글 돌았다. 결국 카페 뒷문으로 입장했다... 로컬 카페라 그런가, 메뉴판에 영어는 보이지 않았다. 하는 수 없이 직원에게 샌드위치 추천을 부탁해서 주문했다. 주문한 코코아와 커피 맛은 나쁘지 않았다. 샌드위치는 대 실패! 맛있어 보이는 케이크도 잔뜩 진열되어 있었지만 돌아가서 밥 먹을 생각에 애써 외면했다. 어느 새 비가 그쳐 있었다.


사람들이 정류장으로 슬금슬금 몰려들었다. 버스가 올 시간이 되었다는 의미였다. 바깥을 보니 사람들 사이에 그 여자 분도 있었다. 알고 보니 오해가 있었다. 그 분은 기념품 가게 근처에서 만나서 같이 내려오자는 의미로 해석했고 우리는 정류장에서 다시 만나자는 의미로 알고 있던 것이다. 아무튼 다시 만났고, 함께 버스를 탔다.



류블랴나로 다시 돌아와 그 분과는 헤어지고, 우리는 곧바로 류블랴나 성으로 향했다. 성 내부를 다 둘러보지 않은 탓인지 아니면 여기가 원래 이런 곳인지는 모르겠으나 엄마는 이곳에서 별로 즐거워 하지 않았다. 나도 딱히 감흥이 있는 건 아니었지만, 엄마 반응을 살피다 보니 어서 이곳에서 벗어나야겠다는 생각만 들었다.



엄마가 유일하게 웃었던 곳, 성의 가장 높은 탑 위. 엄마는 나 모르게 셀카봉을 챙겨 왔었다. 나는 셀카봉을 들고 다니는 게 부끄러워서 꺼내지 말자고 했는데, 웬걸. 이 위에 올라온 외국인들은 죄다 셀카봉을 들고 있었다. 나는 할 말을 잃었고, 엄마는 당당하게 셀카봉을 꺼냈다.


원래는 이곳 레스토랑에서 저녁을 먹을 계획이었지만 먹지 못했다. 이유가 뭐였을까 생각해보면, 내가 영어를 잘 못했기 때문인 것 같다. 아무래도 내 의도와는 전혀 다른 의미의 문장을 말했던 모양이다. 아무튼 우리에게 이곳은 별 감흥이 없는 장소였고 엄마는 배가 고팠기에 우리는 더 늦기 전에 성에서 내려왔다.



늦은 저녁이라 대부분의 식당들이 문을 닫은 상태였다. 문을 연 세 곳 중에서 사람이 많은 곳으로 들어갔다. 전통 음식을 파는 곳인지, 맛을 상상할 수 없는 음식들이 많았다. 우리는 웬 고기 메뉴와 문어 샐러드, 초코 케이크 그리고 와인 두 잔을 주문했다. 아까 카페에서 먹지 못한 케이크가 자꾸 아른거려서 케이크를 주문하지 않을 수 없었다. 고기는 그저 그랬으나 소스가 맛있었다. 문어 샐러드는 그럭저럭 괜찮았고 케이크는 아주 달고 맛있었다. 은근히 양이 많아서 미처 다 먹지 못 했다.


식사를 마치고 나오자 밤이 다 되어 있었다. 게스트하우스가 9시 쯤에 문을 닫는다고 안내 받은 기억이 있어서 서둘러 돌아갔다. 그런데, 입구의 대문이 잠겨 있었다. 문을 두드려 봤지만 아무런 기척이 없었다. 세상에, 노숙해야 하나. 어이가 없어 웃음이 나면서 한편으로는 걱정됐다. 엄마가 숙소 연락처로 전화를 해보자고 제안했을 때, 방 키로 받았던 카드가 갑자기 생각났다. 혹시나 해서 카드를 꺼내 대문에 갖다대니 문이 열렸다. 그 순간 마음이 놓이는 동시에 웃음이 터졌다. 길 가던 사람들에게 우리가 얼마나 바보 같아 보였을까 하며 엄마와 마주 보고 웃었다. 


방에서 쉬면서 엄마와 이런저런 얘기를 했다. 여행 책이 있고 사람들에게 궁금한 것을 묻는 데 거리낌이 없다면 스마트폰 없이 여행하는 것도 나쁘지 않다는 게 주 요지였다. 실제로 우리는 류블랴나에 있는 동안 스마트폰을 꺼낸 적이 거의 없었다. 그만큼 더 눈으로 볼 수 있었고 대화할 수 있었다.


이 날은 점심 때를 놓쳤고 샌드위치 조금 먹은 게 전부였다. 티를 내지 않았지만, 엄마가 힘들었을 거다. 내일은 오늘보다 더 정신 똑바로 차려야겠다고 반성하며 잠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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